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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 식물 가이드

식물의 면역 시스템 – 자기 방어를 배우는 녹색 생명

by 식물과 나 2025. 5. 29.

 

 

식물의 면역 시스템 – 자기 방어를 배우는 녹색 생명체

우리가 흔히 식물을 '움직이지 않는 존재'로 생각하듯, 마치 외부 자극에 무방비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식물도 스스로를 방어하고, 심지어 위협을 '기억'해가며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 이번 글에서는 식물의 놀라운 면역 시스템에 대해 과학적 근거와 함께, 내 경험담을 곁들여 소개를 해볼까 한다.

식물도 면역이 있다?

사람과 동물은 외부 병원체가 침입하면 면역 세포가 이를 인식하고 공격한다. 식물은 이런 세포는 없지만, 세포 수준에서 병원체를 감지하고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이 면역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국소 면역 반응(Local Resistance): 병원균이 침입한 부위에서 세포벽을 강화하고 감염 부위를 고립시킴
  • 전신획득저항성(SAR, Systemic Acquired Resistance): 감염 부위에서 얻은 정보를 식물 전체로 전파해, 다음 공격에 대비

SAR은 일종의 '식물의 기억력'으로, 이미 병에 걸렸던 경험이 다음 면역 반응을 더 빠르게 만든다.

식물도 경고한다 – VOC 신호

더 놀라운 것은 식물이 공기 중으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뿜어 주변 식물들에게 위험을 알린다는 사실이다. 진딧물이 잎을 물었을 때 해당 식물은 '위험 신호'를 VOC로 방출하고, 주변 식물은 이 신호를 감지해 잎의 방어 성분을 미리 만들어낸다.

즉, 식물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직접 겪은 사례 – 화분 간의 경고?

내가 키우는 어여쁜 식물들 중에는 베고니아와 무늬몬스테라가 나란히 놓여 있다. 어느 날, 베고니아에 진딧물이 갑자기 퍼졌고, 조치를 취하기 전에 잎이 일부 손상되었다. 흥미롭게도 그날 이후로 옆에 있던 무늬몬스테라가 잎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특별한 병해는 없었지만, 일주일 간 새잎이 나오지 않고 성장도 멈춘 상태였다.

이걸 계기로 VOC 신호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실험 사례들을 접하면서 정말 식물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 경험은 내게 식물도 외부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지능적인 생명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유도 저항성 – 백신처럼 학습하는 식물

일부 식물은 병해충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특정 천연 물질을 뿌려줌으로써 면역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이를 유도 저항성(Induced Resistance)이라 한다. 이 개념은 농업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으며, 친환경 농법에서 병충해 예방책으로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유도물질로는 살리실산(SA), 자스몬산(JA), 에틸렌(ET) 등이 있다. 이들은 식물 내에서 면역 유전자를 활성화시켜 병원체에 강하게 대응하게 만든다.

 

 

집에서 실험해볼 수 있는 방법

이런 과정을 블로그 독자들도 실험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염된 식물 잎을 아주 조금 떼어내 주변 식물 옆에 놓거나, 진딧물 피해를 입은 잎 근처에 무취의 투명 플라스틱 통을 씌우면 VOC가 전달되며 변화하는 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

또, 식물 영양제 대신 천연 방제제(마늘즙, 유황 혼합액 등)를 활용해 ‘유도 저항성’ 반응을 유도하고, 그 효과를 일주일 간격으로 관찰하는 루틴도 가능하다.

왜 이 주제가 중요한가?

최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지구 전체가 기후 변화로 병충해가 더 빈번해지고 있는 요즘, 식물의 면역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실내 화분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에도, 유기농 재배를 실현하는 데에도 이 개념은 필수적이다.

식물이 스스로 배우고, 기억하고, 경고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면, 우리도 그들을 더욱 섬세하게 이해하고 돌볼 수 있게 된다.

마무리하며

식물의 면역 시스템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의 본능이 아니라, 고도화된 생존 전략임을 알 수 있다. 집에서 키우는 화분들도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과 관찰을 통해, 초록 친구들의 언어를 더 깊이 이해해보고 싶다.

혹시 당신의 식물도 주변 신호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면, 댓글로 그 경험을 함께 나눠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