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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 식물 가이드

식물의 수면 리듬이 있을까? '잠자는 잎'을 따라 마음을 정리하는 밤

by 식물과 나 2025. 4. 30.

식물의 수면 리듬 – '잠자는 잎'을 따라 마음을 정리하는 밤

밤이 되면 식물도 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몇몇 식물은 해가 지면 잎을 접고, 아침이 되면 다시 펼치는 리듬을 반복한다. 마치 인간처럼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하는 생체 리듬을 따르는 셈이다. 이 신비로운 생체 반응은 수면 운동(nyctinasty)라 불리며, 특정 식물들에서 관찰되곤 한다.

잎이 잠드는 식물들

대표적으로 마란타(Maranta leuconeura), 칼라디움(Caladium), 옥살리스(Oxalis triangularis) 같은 식물들이 밤이 되면 잎을 위로 접거나 축 늘어진다. 특히 마란타는 밤마다 잎을 위로 세우며 마치 손을 모으는 듯한 모습을 보여 기도하는 식물이라는 의미인 ‘프레이어 플랜트(prayer plant)’라는 별명도 있다.

이런 수면 운동은 식물의 생존 전략 중 하나로  밤 동안 수분 증발을 줄이고 냉기에 대비하는 목적을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학적인 움직임을 넘어서 감정적으로 위로받는 장면으로 느끼기도 한다.

식물의 리듬, 나의 루틴

나도 처음에는 단순히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마란타가 천천히 잎을 접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믿기지 않는 그 모습은 마치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듯했고, 조용히 안녕을 말하는 듯했다.

그날 나는 그 식물 옆에 있던 화분에 '잘 자요, 나의 마음'이라는 감정 키워드를 붙였다. 또 다른 옥살리스 화분에는 ‘쉴 자격이 있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이후로 매일 밤, 식물이 잎을 접기 시작하면 나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노트를 꺼낸다. 그날 하루의 감정을 라벨링하며 ‘마음 접기’ 시간을 갖는다.

마란타가 잎을 접을 때, 나도 마음을 접는다. 옥살리스가 조용히 몸을 말아갈 때, 나도 온도를 낮춘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작은 실패와 회복의 시간

사실 나에게도 잎을 접는 식물과의 첫 만남이 마냥 순탄했던 건 아니다. 초보 시절 옥살리스의 잎이 밤마다 축 늘어지는 걸 이거 큰일이네 '병들었다'고 착각해 물을 더 주고, 잎을 펴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잎 끝이 말라가고, 점점 전체가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고 서글펐다.

그제야 ‘수면 운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조급했던 나를 다독이며 그 화분에 새 이름을 붙였다. ‘모르고도 사랑했던’이라고. 실수했지만, 덕분에 나는 더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매일 변화를 기록하게 됐다.

지금도 그 화분은 내 책상 위에 있다. 예전처럼 잎을 펼치고 접으며 나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는 잎의 움직임에 맞춰 나의 감정도 천천히 정리해나간다.

모든 식물이 잠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유명한 식물인  몬스테라, 산세베리아, 스킨답서스 같은 실내 식물들은 수면 운동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주야간의 변화에 반응하긴 하지만, 잎을 물리적으로 접거나 움직이지는 않는다. 대신 생리적인 변화, 예를 들어 밤에는 광합성을 멈추고 산소 대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식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그에 비해 마란타, 칼라디움, 옥살리스처럼 수면 운동을 하는 식물은 시각적으로도 명확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도 더 강한 인상을 준다. 나처럼 감정 키워드와 라벨링을 기록하는 루틴을 가진 사람에겐, 이런 시각적 변화는 하나의 리듬으로 다가온다.

수면 운동은 ‘풀비닛 운동(pulvinus movement)’이라는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는 잎자루 밑에 위치한 특수한 세포 조직으로, 내부 수분 압력을 조절해 잎의 방향을 바꾸는 작용을 한다. 이 기능이 없는 식물은 밤에도 잎의 자세를 유지한 채 조용히 하루를 넘긴다.

때론 몬스테라처럼 크고 화려한 식물들이 밤에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묵직하고 따사로운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모든 감정이 움직임으로 드러날 필요는 없듯 말없이 빛을 모으는 식물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닮아 있다.

식물의 수면 리듬 – '잠자는 잎'을 따라 마음을 정리하는 밤
옥살리스 화분들

잠드는 식물을 관찰하는 즐거움

수면 운동을 가까이서 관찰하려면 조용한 공간과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가장 관찰하기 좋은 시간대는 해가 완전히 진 후 1~2시간 이내이며, 천천히 접히는 잎의 움직임은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고요하면서도 경이롭다.

특히 마란타나 옥살리스는 그 움직임이 꽤 눈에 띄는 편이라 초보자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작은 독서등만 남겨두고, 움직임을 영상으로 찍어본 적도 있다. 다음 날 그 영상을 다시 보면 마치 '내 마음이 잠드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수면 리듬 식물 추천

  • 마란타: 잎 무늬도 아름답고, 야간 수면 운동이 활발해 관찰에 적합.
  • 옥살리스: 자주색 잎과 삼각형 모양이 매력적이며, 낮밤 구분이 뚜렷함.
  • 칼라디움: 여름철 낮에는 활짝, 밤에는 축 처지며 리듬 변화가 큼.

식물과 함께 하루를 접는다는 것

요즘은 '마음도 접는 루틴'이 나의 하루 마무리법이 되었다. 침대 옆에 식물을 두고, 그 움직임에 맞춰 감정을 기록하는 시간을 갖는다. 식물이 스스로를 닫아가는 순간, 나도 불을 끄고 오늘의 감정을 하나씩 덮는다.

감정 키워드를 붙인 식물들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있다. ‘지친 날엔 쉬어도 돼’, ‘느린 밤도 괜찮아’, ‘내일은 내일의 잎이 펼쳐질 거야’. 식물과 내가 함께 하루를 마감하는 방식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은 위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