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부터 꽃까지 – 직접 씨앗을 심어본 한 달간의 기록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2년전 어느 봄날,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작은 씨앗 한 봉지를 반신반의로 사보았다.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정리해보고 싶어 시작한 ‘감정 식물 라벨링 루틴’의 연장선이었다.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것을 넘어, 씨앗의 성장에 내 감정을 겹쳐가며 기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1. 파종 – ‘기대’라는 라벨을 붙이며
해바라기 씨앗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나는 ‘기대’라는 단어를 작은 스티커에 적어 화분 옆에 붙였다. 씨앗 하나가 자라 꽃이 피는 과정을 따라가면, 그 속에서 나도 조금은 정리되지 않을까 싶었다. 화분에는 두 개의 씨앗, 키친타월에 올려놓고 물을 적셔 두었다. 나의 첫 씨앗 실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 키친타월 발아 실험 – 작은 변화에 ‘설렘’을 느끼다
3일째 되는 날, 키친타월 위에서 하얀 뿌리가 톡 하고 튀어나왔다.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들뜬 날이었다. 그날의 감정 키워드는 ‘설렘’이었다. 물을 줄 때마다, 조심스레 불빛 아래 놓을 때마다 마치 아기처럼 다루게 되었다. 식물이 이렇게까지 감정에 반응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3. 실패의 날 – 곰팡이와 과습, ‘자책’의 라벨을 붙이다
그런데 며칠 후 키친타월에 피어난 것은 뿌리뿐만이 아니었다. 물을 너무 많이 준 탓에 곰팡이가 번지기 시작했다. 흰 실 같은 곰팡이를 본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 욕심을 냈을까?” 하고 자책했고, 그 날 감정 라벨은 ‘불안’, ‘자책’,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동안 씨앗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4. 다시 다가간 날 – 감정도 식물처럼 조절이 필요하다
며칠을 지나고 다시 식물 곁에 다가갔을 때, 화분에 심었던 씨앗 중 하나가 작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너무 놀랍고 미안했다. 결국 식물도, 감정도 한 번에 관리하려 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나는 물 주는 주기를 조정하고, 매일 아침 햇빛을 받는 시간을 30분씩 일정하게 유지했다. 감정 라벨도 ‘다시 시작’, ‘용서’, ‘조율’ 같은 단어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5. 본잎이 자라는 동안, 나도 자란다
떡잎에서 본잎이 자라기까지의 시간은 꽤 더뎠다. 자라지 않는 것 같던 날도 있었지만,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나의 감정을 가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불면으로 잠을 설치던 날, 그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새싹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은근한 안정감을 주었다.
6. 꽃이 핀 날 – ‘완성’이라는 말 대신 ‘과정’을 떠올리다
30일쯤 되었을 무렵, 내가 키운 씨앗 중 하나가 드디어 노란 꽃을 피웠다. 잡지 속 사진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꽃이었다. 그날의 라벨은 ‘과정’, ‘나아감’, ‘작은 기쁨’이었다. 이 꽃을 보며, 내 감정 역시 이전보다 단단해졌다는 걸 느꼈다.
7. 식물과 감정이 함께 자라는 루틴
나는 감정 키워드를 스티커로 만들어 화분 옆에 붙이는 습관을 계속하고 있다. 감정과 식물을 따로 두지 않고, 매일의 컨디션을 식물의 성장과 연결해 기록하면, 마치 함께 살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어떤 날은 ‘혼란’, 어떤 날은 ‘희망’ 같은 말이 붙어있지만, 모두가 식물과 나의 하루를 담고 있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8. 초보자에게 전하고 싶은 작은 팁
- 씨앗은 발아 테스트부터 – 키친타월로 먼저 시도해보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데 좋다.
- 물은 매일 안 줘도 된다 – 흙이 말랐을 때만 주는 게 오히려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이다.
- 곰팡이 예방을 위해 통풍은 필수 – 특히 실내에서 키울 경우에는 바람이 순환되도록 한다.
- 감정 라벨링은 나만의 방식으로 – 꼭 글이 아니어도 그림, 색깔, 음악으로도 감정을 담아볼 수 있다.
9. 마무리하며 – 씨앗이 나를 키운 한 달
처음엔 내가 식물을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씨앗이 나를 키워준 것 같다. 실패와 조급함, 설렘과 성취가 뒤섞인 한 달이었다. 씨앗은 나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나는 매일 조금씩 자라는 식물처럼 나도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내 창가에는 또 다른 씨앗 하나가 자라고 있다. 오늘의 라벨은 ‘고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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