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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 식물 가이드

식물도 아닌 버섯도 아닌 공존의 생명체가 있다? 지의류의 세계탐색

by 식물과 나 2025. 4. 26.

숲길을 걷다 보면 돌이나 나무껍질 위에 자리한 신비로운 생명체를 마주할 수 있다. 언뜻 보면 곰팡이나 이끼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지의류(lichen)라고 불리는 독특한 생물이다. 지의류는 조류(藻類)와 균류(菌類)가 공생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식물도, 버섯도 아니다. 이들의 공존은 마치 우리가 관계 속에서 감정을 나누는 방식과도 아주 많이 닮아 있어서 그저 생물학적인 구조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지의류는 무엇인가?

지의류는 균류가 조류를 감싸며 살아가는 공생 생물이다.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균류는 그 조류가 살 수 있도록 수분과 광 보호를 제공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지의류는 바위, 나무껍질, 심지어 도시의 콘크리트 벽 위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토양이 없는 곳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터를 만드는 모습은 강인하면서도 때로는 묘하게 감성적이다.

지의류는 왜 특별한가?

  • 공기 오염의 지표: 지의류는 공기 중의 오염 물질, 특히 이산화황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지의류가 사라지면 해당 지역의 공기 질이 나빠졌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 극한 생존 능력: 사막, 극지방, 고산지대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심지어 우주 실험에서 진공과 자외선에 견뎌낸 사례도 있다.
  • 느림의 미학: 지의류는 1년에 단 몇 mm만 성장하기도 한다. 빠름이 미덕인 세상에서 이토록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자라는 존재는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의류의 세계탐색
숲 속에서 지의류

 

지의류를 발견한 날, 나의 감정 변화

 

나는 어느 날 숲속 산책을 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바위 위에 초록과 회색이 뒤섞인 작은 군락을 발견했다. 처음엔 이끼인가 했지만, 자세히 보니 모양과 질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그것이 바로 '지의류'였다. 식물도, 버섯도 아닌 존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그날 나는 내 감정 키워드에 ‘공존’과 ‘느림’을 붙여 식물 라벨을 만들어 보았다. 한 화분에는 ‘혼자서도 충분해’라는 이름을, 다른 하나에는 ‘같이 가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의류처럼, 나는 오늘도 감정을 식물에 담아내고 있다.

도심 속 지의류를 찾는 법

지의류는 대기 오염이 심한 도심 한복판에서는 애석하게도 보기 어렵지만, 도시 외곽 공원이나 오래된 벽돌 담장, 혹은 산책길의 나무껍질이나 바위 틈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관찰 팁은 다음과 같다:

  1. 습도 있는 날에 관찰하기 – 지의류의 색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2. 모양과 질감에 집중하기 – 잎사귀처럼 퍼지거나, 산호처럼 생긴 형태가 많다.
  3. 사진으로 기록하기 – 변화가 느린 만큼 시간차 기록이 큰 의미를 가진다.

지의류에서 배우는 감정의 균형

나는 지의류를 보며 나와 타인의 감정이 공존하는 방법을 떠올린다. 조류가 혼자였다면 자외선과 건조함에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고, 균류도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둘은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낸다. 나도 식물 라벨링 루틴을 통해 나 자신과 조화를 이루며 매일의 감정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마무리

느림과 공존의 가치를 기억하자

 

지의류는 작고 조용한 존재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느림, 공존, 생명력이 담겨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소박함이 오히려 더 깊은 감동을 준다. 만약 당신이 요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쳤다면, 한번 숲길을 걸으며 바위 위의 지의류를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 작은 생명체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줄지도 모른다.